글쓴이 :
웹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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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는 앞으로 ‘환대받는 교회, 환대하는 교회’라는 표어로 사 역하기를 원한다. 환대는 각박한 이민사회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더 나아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서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 었기 때문이다. 로브레스키는“많은 사람들이 초대교회 공동체의 놀라 운 포용력과 인류박애의 실제로 환자나 부상당한 자, 과부와 고아, 체 류자와 낯선 사람, 노인, 노예와 죄수, 가난한 자와 배고픈 자”에 대한 환대를 말하고 글을 쓴 것을 발견해왔다고 했다. 환대가 기분 좋은 날, 그것도 시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단순히 낯선 사람에게 커피 한잔이나, 숙식을 제공하는 정도가 아니라 더 심각한 것이 요구될 때가 있다. 하나님은 환대를 단순히 호의를 베푸는 정도가 아니라 옳지 못한 관계로 인해 생긴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환대를 사용하시는 경 우를 볼 수 있다. 종종 기독교인 집 문 앞에 ‘여기에 들어오시는 분에게 평화가 있으시길’이라는 문패가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만약 여 러분에게 큰 손해를 입히고 도망을 간 사람이 한 밤중에 여러분의 출입 문을 두드린다면 문을 열고 쉽게 환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비 슷한 상황이 빌레몬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빌레몬서를 기 록하게 된 배경도 빌레몬서에 나타난 대로 빌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 가 주인의 물건(돈 혹은 귀중품)을 도적질하여 도망한 것을 18절“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 산하라”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오네시모는 도망자들이 가장 숨기 좋은 가장 큰 도시 로마까지 오게 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바울을 만나게 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불쌍한 죄인들을 환대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손길이 노예요, 도망자인 오네시모와 함께 하심으로 바울의 환 대를 받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셨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신이 복음 을 전한 빌레몬의 노예였고 주인에게 손해를 입히고 도망친 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노예는 한 개의 ‘물건’이었지 인격이 아니었다. 그래 서 심지어는 아리스토텔레스도 노예를 ‘살아 있는 재산’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도망자는 말할 필요도 없이 붙잡히면 사형이었다. 그런데 바 울은 그를 원 주인에게 돌려보내며 종이 아니라 형제로, 사역자로 대해 줄 것을 요청하고 빌레몬은 이것을 실천함으로 초대교회의 놀라운 귀감 이 되었다. 진정한 환대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받아들이고, 형제로 동역자로 삼을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