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개 교회에 주시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창찬과 책망
그리고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읽은 마지막 일곱번째 보내는
라오디게야에 주신 말씀은 칭찬은 없고 책망만 있습니다. 책망만 있다고 해서 이 교회를
주님이 싫어하시고 미워하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라오디게야 교회가 회복되기를 원하는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 주님께서 라오디게야 교회를 보며 책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가진 미지근한 신앙때문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뜨겁지도 차갑지
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의 태도로 주님은 책망하셨습니다. 제가 아시는 분은 비즈니스 접대
때문에 늘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사업을 할 수 없다
고 합니다.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이런 생활을 어쩔 수 없이 반복해야 한다고 합니다. 술취
한 모습으로 예배에 나아옵니다. 예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돌아오기가 힘듭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미지근한 신앙이 찾아올 수 있
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계속 성장하지 못하고 도중에 멈춘 경우 그리고 한때 뜨거
운 신앙을 가졌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믿음이 식어지고 세속화된 경우입니다. 우리에게도
라오디게아 교회 처럼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라오디게야 교회가 미지근한 신앙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라오디게야는 토지가 비옥하고
도로가 발달하여 상업이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농업과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양털
로 옷감을 짜는 섬유산업도 크게 발달하고 유흥과 휴양의 도시로 유명했습니다. 안약과 귀
에 바르는 연고는 당시의 명약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부유한 환경과 교만한 마음이 미지근
한 신앙으로 이끌었습니다. 겉으로는 부요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세속
에 물들고 죄악에 빠져 영적으로 비참하고 괴로운 상태에 빠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
분! 우리가 혹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요? 모든 것이 잘되고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되고 있다면 교만한 것은 아닙니까? 내 생각과 계획과 뜻이 앞서
하나님의 뜻이 개입할 것도 없는 상태가 아닙니까?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과 갈급함을 잃어
버린 것이 아닙니까? 주님은 우리가 회개하여 다시 열심을 갖기를 원하십니다.